2005년 07월 22일
주마등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얼마 전, 내가 '주마등'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빈번하게 쓰는 표현이고, 별 생각 없이 써 왔는데 정작 이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었다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검색 엔진에서 검색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정보들이 나왔다.
『`사물이 몹시 빨리 변하여 돌아감`을 이르는 말이다.등(燈)의 외피(外皮) 중심을 철사 끝에 머물게 하고 속에서 타는 촛불의 열기가 한쪽 방면으로만 빠져나가게 하여 그 힘으로 빙빙 돌게 한 것을 주마등이라고 한다. 등에다 말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돌아가면 등에 그려진 말이 저절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주마등이 돌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변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흔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와 같이 쓰인다. 』
라고 나온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으로는
『사물이 덧없이 빨리 돌아감
중국(中國) 사람들만큼 등(燈)을 즐기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등(燈)을 달았다고 하니 무려 2천5백년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명절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으레 길거리에 등불부터 내건다. 대표적인 것이 정월 대보름의 관등(觀燈) 행사다. 중국(中國)은 주(周)나라 때부터 야간통금을 실시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겪는 불편이 많았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백성들의 억압된 심리도 풀어주고 또 태평성대를 과시하기 위해 명절만큼은 통금(通禁)을 해제하고 휘황찬란한 등(燈)을 궁성(宮城) 주위에 내걸게 했다. 이때부터 차츰 등(燈)을 거는 기간도 늘어나 명(明)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 은 10일간이나 걸게 했으며, 지금은 설부터 대보름까지 무려 15일간을 걸어둔다. 이 날 등장하는 등(燈)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각종 과일과 꽃·물고기 등.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역시 주마등(走馬燈)이 아닐까 싶다. 등(燈) 위에 둥근 원반(原盤)을 올려놓고 원반(原盤)의 가장자리를 따라 말이 달리는 그림을 붙여 늘어뜨린다.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연속동작의 그림을 붙여 놓는 것이다. 밑에서 촛불을 밝히면 등(燈) 내부의 공기가 대류현상(對流現狀)을 일으켜 원반을 돌게 한다. 촛불의 밝기에 따라 회전속도도 빨라짐은 물론이다. 원반이 돌아가면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말이 질주 (疾走)하는 모습이 연속동작으로 눈에 들어 오게 된다. 그것이 주마등 (走馬燈)이다. 워낙 빨리 돌았으므로 주마등(走馬燈)은 세월의 빠름이나 어떤 사물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형용하기도 한다. '마치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 갔다'는 표현이 있다.
走 달릴 주, 馬 말 마, 燈 등불 등』
가 있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다음의 두 장의 사진도 구할 수 있었다.


저 통이 촛불의 열기에의해 돌아가면서 말의 그림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이게 했던 것 같다.
원래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를 때에는 여러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마치 여러 장의 그림을 빠른 속도로 바꾸어 보여주는 것과 같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사람들은 그림의 움직임이 빠르게 지나가는 주마등을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마등이라는 등불을 찾아보기도 힘든 요즈음에는 '주마등과 같이 스쳐간다'라는 표현으로는 기억들이 생생하게 지나쳐 간다는 느낌이 충분히 와 닿지 않는다.
주마등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는 단지 관용적인 표현일 뿐이다.
오히려 현대 국어에서는 '주마등'이라는 낯선 물체를 응용하는 것보다는, 그보다 훨씬 익숙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비유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러니까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를 요즘에 맞게 표현을 고쳐 쓴다면 "영화처럼 눈 앞을 지나갔다." 정도로 쓰면 괜찮지 않을까?
물론 글쓰기야 자기 스타일에 따르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충분한 느낌을 줄 수 없는 관용적인 표현을 굳이 지금에까지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족이지만, 고대의 중국인 들은 움직임의 장면들을 빠르게 보여줘서 마치 화면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이미 수천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뤼미에르 형제가 고대 중국에서 기술을 배워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감히 해본다. ^^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얼마 전, 내가 '주마등'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빈번하게 쓰는 표현이고, 별 생각 없이 써 왔는데 정작 이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었다니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다.
검색 엔진에서 검색을 한 결과 다음과 같은 정보들이 나왔다.
『`사물이 몹시 빨리 변하여 돌아감`을 이르는 말이다.등(燈)의 외피(外皮) 중심을 철사 끝에 머물게 하고 속에서 타는 촛불의 열기가 한쪽 방면으로만 빠져나가게 하여 그 힘으로 빙빙 돌게 한 것을 주마등이라고 한다. 등에다 말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돌아가면 등에 그려진 말이 저절로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주마등이 돌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변한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흔히 `어린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와 같이 쓰인다. 』
라고 나온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으로는
『사물이 덧없이 빨리 돌아감
중국(中國) 사람들만큼 등(燈)을 즐기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부터 등(燈)을 달았다고 하니 무려 2천5백년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명절이나 행사가 있을 때면 으레 길거리에 등불부터 내건다. 대표적인 것이 정월 대보름의 관등(觀燈) 행사다. 중국(中國)은 주(周)나라 때부터 야간통금을 실시했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이 겪는 불편이 많았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백성들의 억압된 심리도 풀어주고 또 태평성대를 과시하기 위해 명절만큼은 통금(通禁)을 해제하고 휘황찬란한 등(燈)을 궁성(宮城) 주위에 내걸게 했다. 이때부터 차츰 등(燈)을 거는 기간도 늘어나 명(明)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 은 10일간이나 걸게 했으며, 지금은 설부터 대보름까지 무려 15일간을 걸어둔다. 이 날 등장하는 등(燈)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각종 과일과 꽃·물고기 등.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자면 역시 주마등(走馬燈)이 아닐까 싶다. 등(燈) 위에 둥근 원반(原盤)을 올려놓고 원반(原盤)의 가장자리를 따라 말이 달리는 그림을 붙여 늘어뜨린다. 마치 영화의 필름처럼 연속동작의 그림을 붙여 놓는 것이다. 밑에서 촛불을 밝히면 등(燈) 내부의 공기가 대류현상(對流現狀)을 일으켜 원반을 돌게 한다. 촛불의 밝기에 따라 회전속도도 빨라짐은 물론이다. 원반이 돌아가면 마치 만화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말이 질주 (疾走)하는 모습이 연속동작으로 눈에 들어 오게 된다. 그것이 주마등 (走馬燈)이다. 워낙 빨리 돌았으므로 주마등(走馬燈)은 세월의 빠름이나 어떤 사물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형용하기도 한다. '마치 주마등(走馬燈)처럼 스쳐 지나 갔다'는 표현이 있다.
走 달릴 주, 馬 말 마, 燈 등불 등』
가 있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인)
다음의 두 장의 사진도 구할 수 있었다.


저 통이 촛불의 열기에의해 돌아가면서 말의 그림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이게 했던 것 같다.
원래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를 때에는 여러 장면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마치 여러 장의 그림을 빠른 속도로 바꾸어 보여주는 것과 같이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사람들은 그림의 움직임이 빠르게 지나가는 주마등을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마등이라는 등불을 찾아보기도 힘든 요즈음에는 '주마등과 같이 스쳐간다'라는 표현으로는 기억들이 생생하게 지나쳐 간다는 느낌이 충분히 와 닿지 않는다.
주마등을 구경조차 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는 단지 관용적인 표현일 뿐이다.
오히려 현대 국어에서는 '주마등'이라는 낯선 물체를 응용하는 것보다는, 그보다 훨씬 익숙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비유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그러니까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를 요즘에 맞게 표현을 고쳐 쓴다면 "영화처럼 눈 앞을 지나갔다." 정도로 쓰면 괜찮지 않을까?
물론 글쓰기야 자기 스타일에 따르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충분한 느낌을 줄 수 없는 관용적인 표현을 굳이 지금에까지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족이지만, 고대의 중국인 들은 움직임의 장면들을 빠르게 보여줘서 마치 화면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이는 애니메이션의 원리를 이미 수천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다는 뤼미에르 형제가 고대 중국에서 기술을 배워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감히 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