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대한 단상



스웨덴에는 남자화장실에 소변기가 없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슨 남녀평등 국가답게 남녀 화장실의 변기 개수까지도 평등하도록 법으로 규정되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화장실에도 한가지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소변기는 모두 철수시키고, 그 대신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좌변기로 교체한 것이다. '화장실 변기의 개수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우리가 하루 중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를 생각해보면 그리 간단히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여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화가 끝난 후 둘이 똑같이 화장실에 들어갔는데도 항상 먼저 나와서 기다리는 것은 남자이다.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도 비교적 한산한 남자화장실에 비해서 여자화장실은 화장실 밖까지 줄이 늘어서있다.

주의 깊게 보았다면 발견할 수도 있었을 문제이고, 관심이 없었다면 그냥 흘려 보았을 수도 있는 문제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문제들의 원인은 간단하게 생각해낼 수 있다. 첫째는 여자가 볼일을 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화장실의 변기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남자들이 더욱 쾌적한 환경에서 빠르게 볼일을 보고 나올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불합리한 상황임에는 틀림 없고, 심각한 불평등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남녀의 지배-피지배 관계에서 파생된 성차별적 행태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이 만들어지기까지 고의성이 개입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약간의 신체적인 차이와 소극적인 수준의 평등 개념, 별 고민 없는 관습 적용 등이 원인이라면 원인일 수 있을거다. 조금 더 인스턴트한 남성의 소변 자세 덕분에 남성의 소변기는 좁은 공간에 밀집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으니까. 오히려 나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우리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있는 '충분하지 않은 관심'이라는 병폐에서 찾아보고 싶다. 그 '불충분한 관심'의 실체는 바로 '배려가 있음에도 도움은 되지 않는' 바로 그것이다.

얼마전까지 각종 건물과 공공 시설에 설치되던 장애인용 시설물들을 예를 들어보자. 법의 구속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십 수 년 전부터 각종 건물과 공공 시설에 장애인의 활동에 도움이 되는 장치들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초기에 설치된 장비들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이를테면 비장애인이 걸어서 올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경사진 휠체어용 통로. 맹인용 보도블럭을 따라가다 보면 주차방지용 돌기둥에 맞닥뜨리는 일은 흔하다. 휠체어용 리프트에서 휠체어가 떨어져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는 몇 번 쯤 기사거리가 되었다. 사실 이런 일들은 단 한번만이라도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했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일들이다. 장애인이 자기 힘으로 바퀴를 굴려 경사를 올라가려면 휠체어용 통로의 경사는 어느정도가 적당한지, 휠체어가 안전하게 고정되기 위해 리프트가 어떤 모양이어야 하는지, 그정도는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거다. 적어도 설계 단계에서 사용자의 입장을 한 번만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알 수 있는 개념이다. 하지만 바로 그 '불충분한 관심'때문에 장애인을 위한다는 좋은 취지가 실질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화장실의 경우도 그와 비슷하다. 지금까지 건물들을 설계해 온 건축가들은 분명 남녀가 동등한 화장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접근 방법은 그다지 적절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화장실의 평등을 이룩하기 위해 '동등한 면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면적에 따라 지어질 건물의 가치가 정비례하고, 적절한 공간 배치가 최우선 과제인 건축의 세계에서 그런 방식의 접근은 자연스러웠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리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두 종류의 화장실에 같은 면적을 부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둘 중 한 쪽은 불편한 곳이 되어버렸으니까.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곳곳에는 '충분하지 않은 관심' 때문에 그 배려가 빛이 바래는 일들이 많다. 예를 들면 정부 기관의 웹사이트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웹사이트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단축키를 이용하는데 대체로 F12키를 이용하는 듯 하다. 하지만 몇몇 사이트는 전혀 다른 키를 사용한다. 그나마 그 사실을 제목에 알려서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게 하는 사이트는 양호한 편이다. 어떤 사이트는 시각장애인용 사이트에 접근하려면 아주 작게 위치된 조그만 링크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다. 그 작은 링크를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찾아들어갈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시각장애인용 사이트를 따로 만들어주는 큰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소한 점을 놓치면 그 배려가 빛을 잃게 된다.

사실 소수자에 대한 배려, 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아주 조금의 관심이 부족해서 그 노력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은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조금의 관심을 보태는 것은 크게 시간, 돈, 노력이 더 드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단지 화장실의 변기 개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림은 마르셸 뒤샹의 '샘')

ps. 이 글을 쓰는 중에 듣게 된 건데 우리나라에서도 화장실의 평등을 사용자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는 생각은 이미 일반적인 개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화장실의 설치에도 실사용자의 편의를 많이 고려한다고 한다.

by 머스타드 | 2005/07/23 17:22 | 생각하고 말하기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lontide.egloos.com/tb/38106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Lain at 2005/07/24 15:35
와우.. 이 글 Good.

딴소리지만 어떤 건물에 들어갔을 때 화장실이 깨끗하고 시설이 좋으면 호감도 +500 상승이죠.
가령 7호선 뚝섬유원지였나.. 암튼 거기 지하철 화장실에 갔을 때 화장실이 넓고 칸이 많은 건 둘째치고 세면대 바로 옆 벽에 선반을 만들어놓은 걸 보고 센스있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여자 화장실 내에 화장을 한다거나 하는 용도로 따로 거울과 선반이 비치된 벽이 있다고 해도 세면대 바로 옆에 만들어두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손씻을 때 핸드백 두기 마땅찮은 경우가 많은 점을 잘 집어낸 예죠 뭐-ㅅ-
Commented by 머스타드 at 2005/07/24 21:44
Lain// 요즘 내 글 열심히 읽어주는건 지연이 밖에 없는 것 같아. 고마워 흑흑. ㅡㅜ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